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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ISSUE)

악마를 보았다 - 28사단 집단구타 사망사건 긴급 현안 브리핑

by ^. 2014.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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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군대에도 이런일이 있었을까? 아니면 이제 와서야 조금씩 밝혀지는 것 뿐인가?
28사 집단구타 사건으로 인하여 군장병이 사망을 하였다. 마치 실사판 악마를 보았다를 보는 것 같다.

악마를 보았다 - 28사단 집단구타 사망사건 긴급 현안 브리핑



아무리 군대라고 하지만 폭행에 가담한 사람들하며 방관을 하는 사람들 하며 도대체 생각은 없는 것인가?


아래는 군인권센터(http://mhrk.org/news/?no=1345) 의 파일 내용을 옮긴 것이다.

최근의 22사단 총기사망사건을 비롯해 육군 22사단 이병과 3사단 이병과  해군 일병의 자살사건을 접하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가장 빛나는 시절,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갔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자식을 봐야 하는 부모는 누가 치유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윤 일병이 집단폭행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윤 일병의 눈물을 닦아주고 윤 일병이 남기고 간, 군대의 구타가혹행위라는 악습을 뿌리 뽑는 숙제를 해야 할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군대가 예전처럼 드러내고 구타가혹행위를 할 수 없는 곳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 접한 28사단 집단구타사망사건은 우리 국민들의 믿음을 송두리째 날려 버릴 정도로 야만스러움과 핏빛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 잔혹함에 제대로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에 우리 군인권센터는 실체적 진실을 밝혀서 재판과정에서 윤 일병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가해자가 살인죄로 유죄를 받아 더 이상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긴급 현안 브리핑을 열고자 합니다.

1. 사건의 경과

피해자 윤 일병은 2013년 12월 입대하여 2014년 2월 18일, 28사단 포병연대 본부 포대 의무병으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증인들의 진술뿐만 아니라 가해자 4 명의 진술에 따르면, 2주간의 대기기간이 끝난 3월 3일 부터 사망하는 4월 6일 까지 매일 폭행과 욕설, 인격모독과 구타,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3월 3일 대답이 느리고 인상을 쓴다는 이유로 가슴 부위를 폭행한 것을 시작으로 4명의 병사들은 매일 지속적으로 집단폭행을 했습니다. 주범인 이모 병장은 마대자루가 부러지도록 허벅지를 폭행했으며, 공범인 이모 상병은 부러진 마대자루로 종아리를 폭행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모 병장, 하모 병장, 이모 상병, 지모 상병은 번갈아 돌아가며 어눌하게 대답한다는 이유로 복부와 가슴, 턱과 뺨을 폭행했습니다. 피해자인 윤 일병이 살려달라고 호소를 해도 적게는 2시간 많게는 3시간 이상 기마자세를 강요했고 점호가 끝난 시간이면 또 다른 가혹행위를 하며 잠을 못 자게 했습니다. 심지어 잠을 못자도록 가해자들은 돌아가며 감시를 했습니다. 또 다시 날이 밝으면 윤 일병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했습니다. 4 명의 가해자 중에서 특히 주범인 이모 병장은 다른 병사들에게 폭행을 지시했고 가장 잔혹하게 온 몸을 구타했습니다. 주범 이모 병장의 잔혹성은 휴가를 가는 3월 17일 새벽에도 윤 일병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다리를 폭행하고 휴가를 간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폭행으로 다리를 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쩔뚝거린다는 이유로 다시 폭행하는 잔인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모 병장과 하모 병장이 휴가 간  3월 17일~ 25일 동안은 의무반에 남아있던 공범인 이모 상병과 지모 상병이 폭행을 계속했습니다. 주범 이모 병장의 폭행으로 상해를 입은 윤 일병의 허벅지를 찌르면서 이모 상병과 지모 상병은 반응이 웃긴다며 계속 고통을 주었습니다. 특히 지모 상병은 폭행으로 심하게 부어서 무릎의 형체가 사라진 것을 보고, ‘무릎이 사라졌네. 존나 신기하다’며 윤 일병의 허벅지를 계속 찌르면서 괴롭혔습니다. 주범인 이모 병장이 휴가에서 귀대할 때까지 지 상병과 이 상병은 윤 일병의 허벅지나 무릎 뿐 아니라  주먹으로 팔과 가슴 부위를 계속 폭행했습니다. 이후 자대로 복귀한 이 병장은 윤 일병이 다리를 절룩거린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가슴과 배, 허벅지를 또 다시 폭행하기 시작했습니다. 4월 2일에는 대답을 똑바로 못한다는 이유로 치약을 짜서 먹이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윤 일병이 사망하게 된 4월 6일을 목격자와 가해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재구성 해보고자 합니다. 공범인 이모 상병의 진술에 따르면 4월 5일 점호가 끝난 21:45~ 4월 6일 02:00 경에 주범 이모 병장은 미친 듯이 윤 일병을 폭행했다고 합니다. 이모 병장은 폭행하는 동안 다른 3명의 가해자들에게 망을 보게 하거나 폭행이 용이하도록 팔을 잡게 했고 또한 폭행을 하도록 지시했으며 윤 일병에게 잠을 자지 말 것을 명령했습니다. 07:30 경 피곤해서 잠을 잤다는 윤 일병의 말을 듣고 이모 병장은 뺨과 허벅지를 폭행한 것을 시작으로 오전에만 쉬지 않고 7회 이상의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특히 오전 10시 경에는 이모 병장이 침대 밑으로 가래침을 2회 뱉으면서 그때마다 핥아 먹게 했습니다. 15:30분 이후 냉동식품을 사와서 함께 먹을 때 쩝쩝거리며 먹는다는 이유로 윤 일병의 가슴과 턱, 뺨을 폭행해서 음식물이 튀어나오자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을 핥아 먹게 했습니다. 이후 4 명의 가해자들은 정수리 부분과 배 부위를 폭행하고 엎드려 뻗쳐를 시킨 상대에서 폭행을 계속했습니다. 16:30분경 윤 일병이 오줌을 싸며 쓰러졌는데도 꾀병을 부린 거라며 이모 병장과 이모 상병, 지모 상병은 뺨을 때리고 가슴과 배 부위를 폭행해서 넘어뜨린 이후로 윤 일병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후 이들은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윤 일병은 연천의료원과 양주병원을 거쳐 의정부 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지만 다음 날인 4월 7일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2. 사건의 위중함

윤 일병 사망사건은 사건 초기 일부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음식물을 먹은 상태에서 폭행을 하여 기도폐쇄에 의한 사건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목격자와 가해자들의 진술에서 드러난 것 것처럼 이 사건은 우발적인 폭행사망사건이 아닙니다.

첫째, 의무대라는 공적 공유공간에서 집단폭행이 이루어졌습니다.
28사단 의무대는 복무 현장이자 생활관이기도 합니다. 즉 윤 일병은 의무대의 특성상 24시간 가해자들과 한 공간에 방치되었던 것입니다. 가해자들은 의무대에서 24시간 윤 일병을 집단적으로 괴롭히고 폭행했습니다. 의무대가 본대와 다소 거리가 있는 점을 이용하여 입원 병사들이 보고 있어도, 간단한 처방을 받기 위해 많은 병사들이 드나들고 있어도 아랑곳 하지 않고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이미 의무대는 이 병장의 제왕적 권력 아래 병사들이 사병화를 넘어 조직폭력배와 같은 양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이 병장의 제왕적 폭력 앞에 의무대지원관인 유 하사도 구타 가혹행위를 방조하고 본인 또한 윤 일병에게 화풀이로 폭행을 자행하기 까지 했습니다.

둘째, 폭행이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합니다.
이 병장은 윤 일병에게 치약 한 숟가락을 먹이고 가래침을 핥아 먹게 하는 등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가혹행위를 했습니다. 윤 일병이 배치 받기 전부터 사망할 때까지 입원해서 전 과정을 목격한 병사의 말에 따르면. 단 하루도 폭행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부터 밤까지 90대 이상 가슴과 다리, 배, 머리 등 윤 일병의 온 몸을 매일 폭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점호 시간이 지나면 군기를 잡는다고 도수체조를 강제로 시키는 등 가혹행위를 하고 잠을 재우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윤 일병이 계속된 폭행으로 힘든 기색을 보이면 링거 수액을 주사한 다음에 조금이라도 원기가 돌아오면 또 다시 폭행을 자행했습니다. 특히 사망 당일은 아침부터 사망하는 시점까지 수액을 주사한 2시간을 제외하면 쉬지 않고 폭행을 했습니다. 또한 얼굴과 허벅지의 멍을 지우기 위해 안티프라민을 발랐을 뿐만 아니라 윤 일병의 성기에 안티프라민을 발라서 성적 수치심은 물론 육체적 고통까지 주는 성추행을 했습니다, 한편 사건 발생 당일 오전에 허리통증으로 파스를 받으러 의무대에 간 병사의 말에 의하면, 이미 오전에 윤 일병은 숨도 올바르게 쉬지 못하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윤 일병이 정신을 놓고 쓰러졌을 때조차 꾀병을 부린다며 뺨과 가슴, 배 부위를 폭행했던 것입니다.

셋째, 살해의 의도성이 명백합니다.
1개월 동안 잠도 재우지 않은 채 쉬지 않고 집단 폭행을 했다면 사망으로 연결 될 수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예견 가능한 일임에도 가해자들은 폭행을 멈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욱 폭행 빈도와 강도를 높여갔습니다. 진술서에도 드러나듯 이모 병장은 사건 이전에 이미 “나는 쟤(윤 일병)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윤 일병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이모 병장과 지모 상병은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심지어 사건 당일, 목격자 진술에 의하면 폭행 후 윤 일병이 쓰러지자(1차 쓰러짐) (사망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맥박과 산소포화도 측정을 합니다. 측정 결과 정상으로 나오자 꾀병을 부린다며 재차 폭행했습니다. 이후 계속된 폭행으로 윤 일병은 오줌을 싸며 또 다시 쓰러졌을 때도 꾀병이라며 뺨과 가슴, 배 부위를 수차례 폭행했습니다. 이런 정황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28사단 검찰관 최승호는 살인죄로 기소하지 않고 상해치사로 기소했습니다. 검찰관 최승호는 살인죄로 기소할 경우 무죄가 될 수 있어서 그랬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가해자들이 지속적으로 집단폭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 당일만을 조명하여 우발적 사망사고로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보지 않는 것으로써 지속적인 집단 폭력에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설령 검찰관 최승호의 주장처럼 살인죄로 기소할 경우 무죄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주의적 공소사실을 살인으로, 예비적 공소사실을 상해치사로 기소하면 되는 것입니다.

넷째,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시도했습니다.
증거인멸 시도는 사망하기 전부터 이루어졌습니다. 이 병장은 구타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 병장은 다른 가해자들에게 지시해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윤 일병이 교회에 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또한 가족 초청 운동회에는 점수가 부족해서 윤 일병은 가족을 초청할 자격이 없다며 가족들이 면회 오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이후 사망사건이 발생한 당일에는 윤 일병이 병원으로 이송되자 연천의료원 주차장에서 주범 이모 병장은, 동행한 공범 하모 병장과 이모 상병에게 사건 은폐를 지시했고, 귀대해서 이 병장과 이 상병은 부대에 남아 있던 지 상병에게 함구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또한 전 과정을 목격한 입실 환자인 병사에게는 ‘00씨는 자고 있던 거에요’라고 입을 다물라고 압박했습니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윤 일병이 음식을 먹고 TV를 보다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말을 맞췄습니다. 나아가 의무대에는 구타나 가혹행위가 전혀 없었으며 평소에 화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단순 기도폐쇄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 구타에 의한 사건이라는 제보를 입수한 포대장은 4월 6일 사건 당일, 조사를 위해  잠을 자고 있던 가해자들을 깨워야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건 다음날인 4월 7일 오전 9시 증거 인멸을 위해 하 병장은 윤 일병의 관물대를 뒤져서 수첩 2권을 찢어서 버리는 대담성을 보였습니다. 이 사실을 이 병장은 알고 있었고 분리수거장에는 이 상병과 이 일병이 미리 대기해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조사과정에서 처음에 가해자들은 윤 일병이 음식을 먹고 TV를 보다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주장을 계속하다가 수사하던 헌병대가 ‘윤 일병이 깨어날 것 같다’고 하자 그제서야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이런 정황들은 본 사건이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지속적인 집단 구타와 가혹행위로 사망했다는 것을 가해자 스스로 명백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군대의 고질적인 악습, 폭력이 대물림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가해자 중 두 명(이 일병은 사망과는 관련 없고 윤 일병에게 폭행을 1 차례 한 것으로 기소됨)은 윤 일병이 전입오기 전에 이모 병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이 일병의 경우, 이 병장이 치약 한 통을 다 짜서 먹게 하고 물고문을 했습니다. 목격자의 진술에 의하면 지 상병의 경우, 이 병장으로부터 후임 관리를 못 한다는 이유로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폭행을 당했습니다. 나아가 이 병장으로부터 ‘말을 듣지 않으면 윤 일병이나 이 일병처럼 얻어맞는다. 나를 찌르는 놈은 아버지 회사를 망하게 하고 엄마는 섬에 팔아버리겠다’는 협박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폭력은 대물림 되어 지모 상병은 이모 병장의 지시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폭행을 자행하게 됐습니다. 이렇듯 윤 일병 사건은 외부의 감시와 견제가 부재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군대 폭력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윤 일병 사건은 군대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메커니즘, 즉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면서 폭력의 악습이 대물림되고 지속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군대 폭력의 악습을 끊기 위해서 이 사건은 제대로 다뤄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군대의 폭력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요구사항

위에서 언급했듯이 의무대라는 공간의 특성과 폭행의 잔혹성과 지속성, 살해의도 및 조직적인 증거인멸 행위와 폭력이 대물림되는 악습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대배치 후 1달 동안 지옥에서 살았던 윤 일병과 앞으로 생겨날지도 모를 또 다른 윤 일병을 위해 살아남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첫째, 28사단 집단구타사망사건은 공소장을 변경해야 합니다.
많은 증언들이 말해주고 있듯이 28사단 집단구타사망사건은 반복적으로 지속되어 온 집단폭행사건입니다. 외부의 감시와 견제가 없는 상태에서 집단폭행은 갈수록 대범해지고 심각해졌습니다. 그리고 집단 폭행이 가져올 결말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집단구타라는 범죄행위를 중단하기는커녕 더욱 폭행의 빈도와 강도를 높여만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직적인 은폐를 위해 증거인멸을 꾀했습니다. 따라서 28사단 검찰관은 살인죄로 공소장 변경을 해당 재판부에 요청해야 합니다.

둘째, 28사단 보통군사법원은 결심공판을 중단하고 공소장변경명령을 해야 합니다.
8월 5일 이 사건 결심공판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재판부는 결심공판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28사단 검찰관 최승호가 공소장 변경을 요청하면 28사단 보통군사법원은 이를 허가해야 합니다. 나아가 만약 28사단 검찰관이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으면 직권으로 공소장변경명령을 해야 합니다.

셋째, 성추행으로 추가 기소해야 합니다.
사건 당일인 4월 6일 10:30경 주범인 이모 병장의 지시로 하 병장과 이 상병은 윤 일병의 성기에 액체 안티프라민을 바릅니다. 이는 윤 일병에게 성적 수치심과 육체적 고통을 주기 위한 것으로서 강제추행에 해당됩니다. 추행은 객관적으로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는 것입니다. 판례에 의하면,  ‘추행’이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그리고 강제추행죄의 성립에 필요한 주관적 구성요건으로 성욕을 자극·흥분·만족시키려는 주관적 동기나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3.9.26, 선고, 2013도5856, 판결)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8사단 검찰관 최승호는 피고인들을 성추행으로 추가 기소를 해야 합니다.

넷째, 관할군사법원을 6군단으로 옮겨야 합니다.
윤 일병 사망사건과 관련하여 지휘책임이 있는 간부 17명이 징계처분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대량 징계처분을 받은 17명이 자신들을 변호하기 위해 사건을 최소화하도록 군사법원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큰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가해자들과 지휘책임자 17명의 소속부대인 28사단에서 재판할 것이 아니라 상급부대인 6군단에서 재판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22사단 총기난사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건의 위중함에 따라 상급부대인 1군사령부로 관할군사법원을 옮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그럼으로써 재판의 공정성을 조금이나마 담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군대에서 비명에 간 윤 일병의 죽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이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모두 밝혀지고 주범이 살인죄로 유죄를 판결 받는 것만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며 나아가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군 당국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이상 28사단 집단구타사망사건 긴급 현안 브리핑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7월 31일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

[ 사건 일지 / 출처 : 군인권센터 ]


돌82넷이 보기에도 군대도 이제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군대안에서의 자살 사고, 총기 사고도 문제지만 이제는 폭행으로 인한 사망 사고까지...
군대 조직이 도대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피의자들은 얼마나 형을 살지도 관심이다. 사람이 죽었음에도 분명 무기징역까지는 안 갈 분위기이다.
참으로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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